우나스텔라: 추격의 경제학, 혹은 미학

Stories of Bands
작성자
이무영
작성일
2023-05-22 10:53
조회

수 년째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스타트업은 스페이스X입니다. 시장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순위는 공고합니다.

머스크라는 걸출한 창업가이자 경영자가 이끌고, 로켓이라는 극단의 하이테크 영역에서, 가장 빠르고 혁신적인 마일스톤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기업.

스페이스X가 가장 앞서 나가고는 있지만 우주 산업의 최종 위너가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안정성과 비용을 합리적인 수준까지 맞추려면 엄청난 기술 개발이 더 요구됩니다. 이때부터 상업화는 시작이니 지금은 큰 사업의 준비 단계 정도가 되겠네요. 제프 베조스, 리처드 브랜슨과 같은 당대의 거인들까지 우주라는 영역에 여생을 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무궁무진한 사업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을 투자함으로써, 우주 산업에 발을 담그기로 했습니다.

얼핏 보면 매우 무모해 보이는 시도입니다만, 실상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투자가 높은 확률과 큰 임팩트의 곱이라면, 오히려 이 투자는 매우 좋은 투자가 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고 확신합니다.

첫째 이유는 제조업의 역사적인 맥락과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며, 둘째는 박재홍 대표님이 충분히 이를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창업자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산업 혁명과 포디즘을 거치면서 대규모 자본 투입과 효율적인 엔지니어링에 근간한 대량 생산은 대부분의 산업에 있어 주류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당연히 각 영역에서 이런 패러다임을 이끈 회사들은 당대에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받았는데(록펠러의 스탠다드오일, 카네기의 US스틸, 헨리 포드의 포드, 에디슨의 GE 등), 한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기술과 경영,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라는 변수는 후발자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줬고, 역량과 의지가 충만한 창업가들은 이 기회를 포착해 왕좌를 빼앗았습니다. 특히 2000년대 중국의 부상은 인터넷 시대에도 제조업 헤게모니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 모든 과정에서 조연이라고 하기에는 섭섭한 것이 한국, 그리고 한국의 기업들입니다. 대부분의 (제조) 산업에 있어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글로벌 top-tier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며, 자본과 기술이 전무하다시피 한 환경에서 가장 빠른 캐치업을 이뤄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컨대, 현대 산업의 발전은 서양의 성공이 동양에서 꽃피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고, 한국은 이 ‘추격의 경제학’에서 당당하게 주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서양에서 핫한 산업 중 하나가 우주 산업이며, 이 산업에서도 같은 맥락이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추격 신화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무엇보다 사람입니다. 탁월한 창업가와 훌륭한 인력들이 불가능한 미션을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변변한 조선소도 없는 상황에서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 장을 레버리지 삼아 굴지의 선주로부터 수주를 하고, 차관과 대출을 통해 온통 남의 돈으로 건조와 인도에 성공한 정주영 스토리, 2년이면 2배 이상의 기술격차가 벌어지는 반도체 산업에서 30년이 넘는 기술격차를 오로지 인재만으로 극복한 이병철 스토리는 우리에게 충분히 익숙하지만, 외국의 누군가가 접한다면 hallucination 이라고 치부하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이처럼 훌륭한 창업자와 핵심 인재들이 어떻게 기업을, 그리고 역사를 만들어내는지 우리는 주변에서 이미 충분히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축적된 무형자산이 시대를 넘어 계승되고 확산된 현상 중 하나가 작금의 스타트업 씬의 부흥이라고 생각하며, 우주 산업도 이러한 해리티지를 누리는 데 있어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우주 산업 내에서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작지 않은 성공의 경험들이 축적되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복판에서 상장했던 세트렉아이는(당시 저는 자산운용사에 근무하하며, 훌륭한 사수를 도와 IPO펀드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뭐 이딴 것까지 상장하냐는 사수의 그답지 않은 볼멘소리 때문에 각별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딴 것’의 이유는 낮은 매출과 시총 그리고 언제 열릴 지 알 수 없는 시장이었습니다) 가치를 인정받고 상장 시점 대비 약 20배 정도의 기업가치로 한화 그룹에 편입되었습니다. 우나스텔라가 진입하는 발사체 시장에서도 선발 주자들이 하이라이트 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곳은 해외에서 궤도 발사에 성공해 특례 상장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박수를 보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산업 초기 단계에서는 크고 작은 성과를 경쟁적으로 내면서 해외의 거인들을 캐치업하고, 산업 안으로 미래의인재를 끌어들이는데 힘을 모으는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그러다 복수의 위너가 탄생하기도 했구요 (조선 3사, 가전의 삼성과 LG, 완성차에서 현대와 기아, 반도체에서 삼성과 하이닉스 등) 이제 막 성공스토리가 쓰여지고 있는 이 산업에서, 세계적으로 검증된 가장 빠른 테크트리에 대한 이해와 로켓 사이언스 분야에서의 글로벌한 산업 경험을 갖고 계신 박재홍 대표님은 그 ‘위너들’ 리스트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로켓사이언스를 강의할 정도의 역량을 가진 아쉬울 것 없는 분이, 심지어 독일에서 같이 연구하던 팀원들을 데리고 고국에서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투자 검토 과정을 통해 대표님이 갖고 계신 확신에 꽤나 공감하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그 확신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힘든 시장 상황 속에서 반년간 펀드레이징을 하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의연하게 로드맵대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하나씩 마일스톤을 달성해가시는 담담한 모습 속에서, 앞서 언급한 기라성 같은 창업자들의 단면이 떠올랐다면, 오바일까요? 글쎄요, 오늘도 우나스텔라는 스페이스X보다도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며 발사체 업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선발자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문송한 제가 어떻게 앞으로 도울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대표님과 비슷한 종류와 수준의 확신을 공유하고 있기에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을거라 믿어봅니다. 모험 자본으로써 본령에 충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